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자 서울 종로구 일대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로 도시락을 준비해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권호욱 선임기자

코로나19 확진자 6명 발생···단 한 사람만 몰라
1년 전 직장 내 성폭력 신고 뒤 지속적 따돌림
팀 내 코로나 단톡방에 피해자만 초대 못 받아
노동자 건강권·안전권 침해하는 불법행위

국내 한 대기업 계열사에서 회사 내 코로나19 확진자 정보를 공유하면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를 따돌리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회사 내부에서 다수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직원들에게 검사를 받으라고 공지하는 상황에서, 지속적 따돌림을 당하던 성폭력 피해자만 이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

국내 대기업 계열사에서 근무하는 A씨는 1년 전 직장 팀 상급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이 사실을 신고한 이후 지속적인 따돌림과 업무 배제를 당해왔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팀 단체대화방(단톡방)이 만들어졌지만, 팀에서 단 한 사람만 초대받지 못했다. 바로 A씨였다.

지난 10일 회사 건물에서 최초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토요일인 12일에 확진자 5명이 추가로 나오면서 회사는 전체 직원들에게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것을 공지했다. 하지만 팀 내부의 코로나19 관련 단톡방에서 배제된 A씨는 이 소식을 전혀 알 수 없었다.

회사의 대다수 직원들이 주말 동안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사이, A씨는 아무것도 모른 채 14일 출근해 다른 팀 동료로부터 이 소식을 듣게 됐다. 뒤늦게 A씨가 아직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은 다른 직원과 함께 보건소에 검사를 받으러 가겠다고 보고하자, 상사는 모르는 척 “어디 가?”라고 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4일 이 사실을 공개하며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에서 누군가를 고의로 배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전국고용평등상담실 네트워크 소속 여성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예방 및 금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A씨는 지난해 10월 팀 상급자로부터 직장 내 성폭력을 당했다.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의 회사에서 그동안 성폭력 사건이 여러차례 있었지만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을 목격해왔던 피해자는 참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가해자를 계속 마주해야 하는 고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고민 끝에 두 달 후인 지난해 12월 회사에 문제제기를 했다.

회사의 첫 반응은 “가해자·피해자 모두 문제상황을 일으켰으니 둘 다 나가라”는 것이었다.

A씨가 성폭력을 신고하자마자 회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징계하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A씨에게 징계사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로 징계위를 열테니 자술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회사는 이후 이런 조치가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한 후 실제 피해자를 징계위에 회부하지는 않았으나, 회사에서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인계하고 쉬었다 오라며 휴직을 권고했다.

A씨는 휴직 권고가 자신을 위한 조치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을 달랐다. 2주간 휴직 후 복직하자 A씨는 담당 업무에 완전히 배제됐다. 기존에 담당했던 영업 업무는 맡기지 않은 채 업무실적에는 반영되지 않는 서류 업무만을 맡겼다.

상사는 A씨에 대해 “물의를 일으켜놓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 “너의 상황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너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기겠느냐”고 말했다.

A씨가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거듭 회사에 요청했으나, 사측의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초 견디다 못한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해 형사고소를 했고, 가해자는 지난 8월 징계를 받지 않은 채 자진 퇴사했다.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해결도 없이 업무배제 등을 당하는 가운데 건강과 직결된 코로나19 관련 정보조차 배제당한 상황에 A씨는 분노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이소희 활동가는 “불이익 조치를 1년 가까이 겪고 있었고,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권과 안전권에 직결된 문제이자 국가 차원에서 중요성을 강조하는 코로나19 관련 정보마저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자 A씨가 심리적 타격을 많이 입었다”고 전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1항 14조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조치’에 대해서 신고자 및 피해자에 대해서 징계·정직 등 부당한 인사조치, 직무 미부여 등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인사조치, 집단 따돌림 등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를 하거나 방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