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물 소지·성폭력 모의만 해도 ‘처벌’

정부, 디지털 성범죄에 무관용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16세’로
음란물 얼굴 합성 행위 등도 범죄

앞으로는 성착취물을 소지하기만 해도 처벌 대상이 되고, 성폭력 ‘준비·모의’ 단계에서 적발돼도 처벌을 받는다. 정부는 성매수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피의자’로 취급하던 법을 개정하고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도 상향하기로 했다. 전향적 대책이지만 상당수는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온전한 제도화까지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성가족부·법무부·경찰청 등 관계부처는 23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심의·확정했다. ‘n번방’ ‘박사방’ 사건 가담자들을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기존 법이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대책은 성착취물 제작·유포자 처벌 강화에 그치지 않고, 성착취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까지 염두에 뒀다. 성착취물을 찾아보며 소지하는 이들도 처벌키로 한 것이다. 기존에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소지한 경우에만 처벌했으나, 앞으로는 성인 대상 성착취물 소지도 범죄로 다루기로 했다. 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구매해 다운로드하거나 스트리밍 형태로 시청한 경우도 처벌 대상이 된다.

여론이 비등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한두 가지 처벌 조항만 추가하던 종전 대책과 달리, 이번 대책은 디지털 성범죄물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하는 ‘딥페이크’, ‘그루밍 성폭력’(피해자와 친분을 쌓아 심리적으로 지배한 후 하는 성폭력)에 의해 피해자 스스로 촬영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도 디지털 성범죄물에 포함됐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아동·청소년을 유인해 스스로 촬영케 하는 온라인 그루밍에는 별도의 처벌법을 신설키로 했다.

◆성매수 대상 아동·청소년 ‘피해자’ 인정…모든 인터넷 사업자 ‘성착취물 삭제’ 의무

정부, 디지털 성범죄 대책
잠입수사 도입·형량 상향
‘비동의 간음죄’는 또 빠져

성매수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피해자’가 아닌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분류해 피의자 취급하던 기존 법도 개정키로 했다. 아동·청소년의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강간죄로 처벌하는 미성년자 의제강간죄의 연령기준도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장은 “시민사회단체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대상 아동·청소년’의 피해자 인정 등 중요한 내용들이 대부분 포함됐다”며 “권고로 끝나지 않고 실제 작동하는 제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촘촘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간·장소의 경계 없이 유통되면서 피해자를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리게 한 성착취물 삭제 지원도 강화한다. 그간에는 웹하드 사업자에게만 성착취물 유통방지 의무를 지웠다면 앞으로는 모든 인터넷 사업자에게 성착취물 삭제 및 필터링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디지털 성착취물 정의를 넓힌 만큼 기존의 불법촬영물뿐 아니라 딥페이크, 그루밍 등을 통한 아동·청소년음란물 등도 삭제 대상이 된다. 징벌적 과징금제를 도입해 사업자가 의무를 위반할 경우 제재하기로 했고, 해외사업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역외적용 규정도 도입하기로 했다. 또 삭제절차를 보다 간소화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가 나오기 전에 ‘선 삭제, 후 심의’도 가능토록 했다.

법정형량도 상향된다. 온라인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광고하는 행위, 강간을 준비하거나 모의하는 행위도 처벌키로 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시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던 만큼 양형기준도 현실화하고, 기소나 유죄판결 없이도 범죄수익 몰수가 가능하도록 독립몰수제를 신규 도입하기로 했다.

점차 은밀해지는 디지털 성착취물 유통에 대응하기 위해 마약 수사에 활용되는 잠입수사도 도입하기로 했다. 수사관이 미성년자로 위장해 범죄자를 유인·적발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제껏 나온 대책 중 가장 포괄적이고 발전한 형태의 대책”이라는 긍정적 평가 속에서도 아쉬움의 목소리는 나온다. 대책 상당수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에 집중됐거나, 폭행·협박이 없었어도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않은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하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이 이번에도 빠졌기 때문이다. 신성연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성범죄에 가장 취약한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미성년자 피해자가 많은 이유는 여성 전반에 대한 폭력이 일상화돼 가장 보호해야 할 존재도 보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법이 보호하는 층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는 작업이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