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내 성폭력 피해자의 과반은 피해 발생일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상담소를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의 회복에는 가족 대리인의 초기 대응과 지지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4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공개한 ‘2019년 상담 통계 및 동향분석’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은 상대적으로 낮은 연령대를 대상으로 많이 가해졌고, 강제추행·강간 비중이 높은 양상을 보였다. 연령대별 친족성폭력 비중은 청소년의 경우 14.7%(15건), 어린이는 45.2%(28건), 유아는 72.7%(16건)로 집계됐다. 친족 성폭력 가운데 강제추행은 49.4%, 강간 35.6%로 두 유형의 친족 성폭력 비중은 85%에 달한다. 전체 성폭력 상담통계에서 두 유형을 합친 69.5%보다 현저히 높다. 가해자는 4촌 이내 친족이 33.3%(29건)로 가장 많았고, 친부가 23%(20건)로 뒤를 이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상담소에 상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 이상이 55.2%(48건)로 가장 많았다. 1년 이상이 24.1%(21건), 10년 미만 13.8%(12건), 5년 미만 4.6%(4건), 미상 2.3%(2건) 순이다. 여타 성폭력보다 피해를 드러내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오랜 시간이 지난 일에 의료지원 및 심리상담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는 48.3%(42건), 법적인 대응을 원하는 경우도 32.3%(28건)였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트라우마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가해자를 상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렵거나 불가능할 때 심리치유에 집중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 친족성폭력 피해 이후 상담까지의 기간. 자료=2019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 통계 및 동향분석



성폭력상담소는 “친족 성폭력은 친밀한 가족관계 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피해를 인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친족 성폭력이 가진 다양한 특성으로 인해 빠른 대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피해자들이 가해자 처벌을 하게 된 때에는 이미 공소시효가 도과되기 십상”이라며 “성폭력 피해자가 의료 지원을 받으려면 여성가족부 지침상 2년 이상 경과된 피해의 경우 정신과 전문의 소견서를 요구하고, 성폭력 후유증이라는 소견서를 써주는 것도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난 뒤 심리상담으로 치유하려 할 경우 더 오랜 과정이 필요할 수 있는데 의료지원을 받기는 더 어려운 현실에 부딪힌다. 그것이 피해자들의 치유에 또 하나의 걸림돌”이라 지적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회복을 시도하기까지 주변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상담을 하기 전 주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우가 49.4%(43건), 법적 대응을 한 경우가 19.5%(17건), 대응하지 못한 경우는 14건(16.1%)로 나타났다. 성폭력상담소는 “상담현장에서 피해자들은 주변인에게 많이 도움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된 공감과 지지, 지원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그런 상황에서 피해가 더 오래 지속되고 이후 일상으로의 복귀도 더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친족 성폭력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 이후 주변 지인들의 대응이 피해자의 치유와 일상회복을 위해 중요함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주변인 역할의 중요성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족 등을 대리인으로 앞세워 상담받는 비중이 높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대리인을 통한 친족 성폭력 피해 상담은 47.1%로 전체 통계 61.6%에 비해 14.5%p 적었다. 반면 대리인이 가족인 경우는 전체 평균이 17%인 데 반해 친족 성폭력 피해의 경우 40.2%로 나타났다. 이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주변인에게 피해를 토로한 경우 겪는 경험과 연관돼있다는 분석이다.




▲ 친족 성폭력 피해유형과 연령. 자료=2019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 통계 및 동향분석



본인이 직접 상담한 친족 성폭력 사례 41건 중 22건은 피해를 주변인에게 알렸으나 지지를 받지 못했고, 17건은 아예 대응하거나 말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이 주변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고 답한 경우는 없었다. 상담소는 “친족 성폭력의 경우 가족 대리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들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많이 호소하는 것으로 보아 가족 대리인의 초기대응과 지지가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회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통계로 발표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9년 전체상담은 1419회(1028건), 이중 성폭력 상담은 88.7%에 해당하는 1294회(912건)로 집계됐다. 친족 성폭력은 이 중 9.5%에 해당하는 87건을 분석했다. 성폭력특별법상 친족은 4촌 이내 혈족·인척과 동거하는 친족을 말하는데, 성폭력상담소는 친부, 의부, 친형제, 시부를 나눴으며, 형부·제부·의형제는 ‘2촌 이내 친족’, 조부·삼촌·사촌은 ‘4촌 이내 친족’으로 분류했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