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수 최수근 총성으로 ‘장애 벽’ 깬다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반동만이 총 쏜 사실을 알려준다. 총소리도 관중의 응원 소리도 들어본 적 없다. 청각장애 농아인 명사수 최수근(26·기업은행)에게 사격장도 경기장도 '고요한 세상'의 일부일 뿐이다. 듣지는 못하지만 그의 총성 하나하나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조용하게 부수고 있다.
공기소총 부문 농아인 세계 최강자인 그는 5일부터 15일까지 대만 타이베이에서 벌어지는 제21회 농아인올림픽(Deaflympic) 대회 3연패를 정조준하고 있다.
수근은 지난 2005년 대회에서 농아인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농아인 중에는 적수가 없다. 3일 인천공항에서 있었던 농아인올림픽 대표단 출영식에서 그는 대회 3연패
외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또 다른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어릴적 앓았던 열병 때문에 찾아온 청각장애(2급)라는 굴레를 오히려 최초의 장애인 출신 비장애인 국가대표를 꿈꾸는 데 장점으로 활용한다. 말을 소리로 주고받지 못할 뿐 모든 신체부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농아인들 중에는 종종 장애를 장점으로 승화시켜 비장애인을 넘어서는 능력을 발휘하는 이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기술습득 과정에서 의사소통 문제와 편견 등 갖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난 이후의 얘기다. 수근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올해 5월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겸한 경호처장기 대회에서 비장애 선수들을 누르고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하는 등 3차례 선발전 합계 공동 2위를 달리고 있어 선발이 유력하다. 사격 국가대표는 경호처장기 등 메이저 5개 대회 가운데 상위 4개 대회의 성적 합산으로 선발된다. 특히 이번 농아인올림픽 성적은 4차 선발전에 해당하는 경찰청장기 대회(8∼14일) 기록으로 인정되므로 수근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일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어머니께 걸어드리는 게 최종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81개국 5500여명이 참가하는 이번 농아인 올림픽에 한국은 9개 종목에 사상 최대규모인 107명의 선수단을 파견해 종합 5위(금메달 21개·은메달 10개·동메달10개)를 노린다. 대한장애인체육회(회장 장향숙)는 한국 최고 성적이 2005년 멜버른 대회 7위(금7·은4·동3)인 점과 순위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판단으로 당초 종합 3위 목표에서 5위로 하향 조정했다.
인천=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2009.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