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성폭행범 11명 직접 만나 봤더니…”

성폭행 후 머릿속에 사건 재구성해 범행 합리화 시켜

54명 프로파일링 면접 참여한 인턴 연구원 윤상연 인터뷰

 [ 이슬 기자 ]

 

  “찜질방 숙면실에서 이리 저리 뒹굴며 자고 있는데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내가 옆에 자고 있던 20대 초반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나는 단지 잠을 거칠게 잤을 뿐 성폭행하지는 않았다.”

성폭행을 저지른 후 복역 중인 재소자 중 이처럼 범행 사실을 이상한 논리로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다.

아예 사건을 재구성해 경찰이 조사한 기록과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일반인과 비교해 인상적인 특이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연쇄 성폭행범은 가면을 쓰고 사회 곳곳을 버젓이 활보하다 한 순간 미친개로 돌변한다.

 

 서울 영등포, 대구, 대전, 경기도 안양 교도소 4곳에 분산돼 복역 중인 연쇄 성폭행범 112명 가운데 54명에 대한 프로파일링 보고서가 내년 1월 나올 예정이다. 보고서는 김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를 필두로 진행된 프로파일링을 토대로 했다. 이는 국내 연쇄 성폭행범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기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면접에 참여한 인턴 연구원 중 11명의 연쇄 성폭력범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던 윤상연 인턴 연구원을 만났다. 인터뷰의 초점이 연쇄 성폭력범인 만큼 윤 연구원의 사진은 별도로 올리지 않는다.

윤 연구원은 작년 9월 대구 교도소 재소자를 상대로 첫 면접을 시작했다. 대게 한 명의 재소자와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 1시간가량 소요됐지만 1시간 30분 이상 면접이 진행된 경우도 있었다.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재소자 입을 열기 위해 윤 연구원은 민감하지 않은 이야기부터 풀어 나가야 했다. 개중에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무용담처럼 엮어 풀어내는 이도 있었다.

 

 1평 남짓 밀폐된 공간에서 연쇄 성폭행범과 마주하며 윤 연구원이 받은 인상은 ‘평범함’이다. 간혹 영화배우 원빈을 닮은 꽃미남이 있긴 했지만 대게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외모와 170cm 안팎의 크지 않은 키를 가지고 있었다. 추남에 속하는 외모는 2명에 불과했다. 마초적인 인상을 풍기는 거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골격이 보통이다.

 윤 연구원은 “평소에 생각했던 범죄자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었지만 막상 만나본 결과 일반인과 구별되는 특이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들이 평상복을 입었다면 나 역시 그들을 쉽게 판단할 수 없었을 것이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평범한 이들이 갑자기 악마로 돌변해 연쇄 성폭행을 저지를까. 이 질문에 대해 재소자 대부분은 “분명히 합의한 후 성관계를 맺었는데 이후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를 했다”,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는 식으로 답변을 회피했다고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음란물에 심취하는 경우는 드물고 성욕은 대게 사창가 등지에서 해결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연쇄 성폭행이 발생하는 것인가. 아래는 윤 연구원 설명.

 “강도를 저지른 후 성폭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방어할 힘이 부족한 약자를 상대로 강도를 저지른 뒤 암묵적인 의식처럼 성폭행을 시도한다. 성폭행 피해를 입으면 여성들이 수치심 때문에 신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발적인 연쇄 성폭행 피해는 술 때문이다. 술을 마시게 되면 몸 안에 본능과 알코올만 남게 되는데 일시적으로 솟구친 성욕을 더 이상 참지 못할 때 그 순간 주변에 있는 여성을 붙잡아 성욕을 해소한다.”

 

 이들에게 있어 여성은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단순한 범행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성폭행 후 피해자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하거나 후회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성폭행 상황을 자기 위주로 재정립해 진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상대 여성이 자신과 이야기 나눈 것은 성관계를 원한다는 신호가 아니냐는 식이다.

 몇몇 재소자는 과시하듯 자신이 희생시킨 피해자 숫자를 떠벌인다. 윤 연구원이 만난 내담자 중에서도 그런 파렴치한이 3명 있었다. 윤 연구원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여러 번 오르내리는 것을 느꼈다. 앞뒤 재지 않고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지만 프로파일링 완성을 위해 꾹 참았다고 한다.

 

  면접의 중요 질문은 성폭행 동기, 정황, 여성 취향 등이다. 이 가운데 동기는 '우발적인 성욕 분출'과 '계획적인 강도 후 성폭행'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정황과 관련해 성폭행범들은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당시 정황과 피해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특별히 선호하는 여성 취향이 없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윤 연구원의 말이다.

  “이번 연구에서 연쇄 성폭행범의 여성 취향을 조사하면 뭔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 이들은 자신의 여성 취향과 상관없이 범죄를 저질렀다. 강도짓을 하려고 할머니만 혼자 있는 집에 들어갔다가 할머니를 상대로 성폭행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이때문이다. 물론 계획적으로 성폭행을 계획하는 경우에야 자신의 성적 기호에 맞는 여성을 물색하지만 강도나 우발 범행을 저지를 때에는 죄를 범하기 쉬운지 여부를 따지는 경우가 더 크다. 우발적인 성폭행의 경우에는 외모나 특징을 떠나 단지 성폭행범 주변에 있었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한편 먼저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연쇄 성폭행의 대상 중 84.5%가 전혀 모르는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했고, 봄과 여름에 발생률이 높게 나타났다. 연쇄 성폭행범이 범행을 저지르는 시간은 대게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이고, 대부분 직장이나 거주지 근처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 뉴스한국 2009.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