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재현의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합니다.
헌법재판소는 23일 19세 미만 미성년 피해자의 영상녹화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는 성폭력특례법에 대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성폭력 재판에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는 법정에서 증언하지 않아도 이를 영상으로 녹화한 진술이 있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동 성폭력 피해자라고 할지라도 법정에 직접 출석해서 진술해야 합니다.
‘8살 입양 딸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도 “아이가 먼저 유혹했다”며 변명한 남성’. ‘손녀뻘 초등학생 피해자 상대로 8년간 성범죄…재판에서는 “먼저 유혹했다” 주장’. 유죄를 선고받은 아동·청소년 성폭력 가해자가 형량을 줄이기 위해 법정에서 피해자의 품행 문제를 부각한 사건에 관한 기사 제목입니다. 이제는 가해자 측이 무죄 입증과 형량을 줄이기 위해 이렇게 가해자에게 유리한 질문으로 피해자를 몰아붙이는 걸 아동·청소년들도 견뎌야 하는 겁니다.
◇헌재의 위헌 결정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폭력 가해자의 방어권이 더 중요하다는 게 주된 이유입니다.
헌재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도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화로운 방법을 상정할 수 있는데도 반대신문권을 실질적으로 배제해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건 피해의 최소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폭력범죄의 특성상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 진술이 핵심 증거인 경우가 적지 않고, 진술증거를 탄핵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촬영한 영상물에 수록된 진술의 진정함이 인정된 경우 증거로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증거 왜곡이나 오류를 탄핵할 효과적 방법인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고 대체 수단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어떤 점이 달라지나요?
이제 나이와 관계없이 아동이 법정에 나와서 자신이 겪은 피해를 진술하고, 이후 가해자 측의 반대신문에 답변해야 합니다.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거나 피해자의 사적 정보를 유포하는 일이 다수 발생합니다. 성인도 견디기 어려운 일인데,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심각한 2차 피해에 직면하게 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요?
이해를 돕기 위해 끔찍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친부가 아동을 성폭행한 사건에서, 이제 영상녹화물을 제출하는 것이 위헌 결정으로 불가능하게 됐기에 직접 아동이 법정에 나와야 합니다. 법정이 아니라 법정 옆에 마련된 다른 장소에서 영상 중계가 된다 할지라도 어쨌든 피해 아동은 친부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려 직접 말해야 합니다.
이후 가해자 측에서 하는 반대신문에 답변해야 합니다. 반대신문은 보통 변호사가 하겠지만 피고인인 친부가 할 수도 있습니다. 친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동의 마음은 어떨까요?
더욱이 아동 옆에는 보통 신뢰관계자가 동석하는데, 보통은 친모입니다. 가족 관계에서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에서 친모가 가해자 편에 서는 경우를 보아왔습니다. 아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나아가 우리 딸이 유혹했다고 진술한 때도 있었죠. 피해 아동은 안 그래도 낯선 장소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텐데, 친부로부터 성폭행당한 사실을 진술하고 이에 더해 반대신문권에도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겁니다.
저는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이 상황이 헌법에 합치되는지요? 이게 정의입니까?
◇이번 판결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요?
일반 형사사건에서 진실을 찾아가기 위한 반대신문권은 필요하고, 피고인 방어권의 핵심이 됩니다. 그러나 아동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피고인의 방어권보다 피해자의 2차 가해를 막는 게 더 헌법에 합치될 때도 있는 겁니다.
최소한 법정에서 아이가 진술하는 공간이 놀이터처럼 꾸며져 있고, 카메라도 아동이 의식하지 못하게 설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한 제3의 진술조력인이 가해자 측의 질문을 이어폰으로 듣고, 피해 아동에게 대신 질문하도록 하는 방법도 필요합니다.
국회에 촉구합니다.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도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화적인 방법을 규정한 입법을 당장 진행해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