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성폭력’ 그들만의 상처가 아닐텐데…

 

 

성폭력 피해 모녀 ‘힘겨운 홀로서기’

친아버지·오빠가 몹쓸짓, 이혼뒤 쉼터·단칸방 전전

피해자모임서 아픔 공유, 서로 힘돼주며 차츰 안정

 

 

‘그 일’이 있고 5년째, 정미경(가명·36)씨는 딸 지혜(가명·9)의 곁을 멀리 떠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도 날마다 학교 교실에 데려다 주고, 하교 시간에는 교실 앞에서 기다렸다. 지금은 딸아이가 다니는 영어학원의 운전사로 일하고 있다. 수입은 적지만, 아이를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돈은 조금 벌어도 아이 옆에 계속 있을 수 있고, 일이 끝나면 함께 집에 갈 수 있어서 안심이 돼요.”

딸아이는 2003년부터 2년 가까이 친아버지와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다그친 끝에 정씨는 2004년 말이 되어서야 ‘어머어마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경찰도 정씨한테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처음엔 경찰도 ‘너무 추상적이고 이야기가 안 된다’며 고소장 접수를 자꾸 거절해 결국 우체국에서 내용증명으로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경찰과 검찰 조사는 당시 5살 난 지혜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8개월 사이에 5~6번의 비디오 진술 조사를 받았다. 그럴 때마다 딸은 악몽에 시달렸다. 검찰은 진술 조사로도 부족하다며 대질심문을 요구했고, 정씨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검찰은 2005년 8월 남편 등을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고소와 동시에 정씨는 이혼 재판을 진행했다. 2004년 12월 집을 나온 뒤 정씨는 쉼터와 단칸방 생활을 전전했다. “가장 절실하게 원한 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건데, 친부가 재산이 많다고 거절당했어요.”

딸아이를 치료하는 일이 시급했다. ‘아이 말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며 정씨를 격려했던 한 소아정신과 의사에게서 아동 성폭력 전담 센터인 ‘해바라기 아동센터’(www.child1375.or.kr)를 소개받았다. 우울증이 심해 당장 조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센터의 도움으로 모녀는 병원에 입원했다.

10개월 동안 지혜는 약물·놀이치료를 받았다. 지혜는 그때에야 ‘내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이란 걸 깨달았고, 아이가 점점 밝아지자 정씨도 덩달아 치유가 됐다.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하고, 밖에 나갈 때면 정씨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을 정도로 세상을 두려워했던 지혜가 이젠 엄마 없이도 나다닐 수 있게 된 건 치유 프로그램 덕분이다.

그 뒤 센터에서 만난 피해 어린이 엄마들과 ‘미성년자 성폭력 피해자 부모들의 사랑방’이란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고 캠프도 떠났다. 엄마들은 서로를 지지하고, 상처를 쓰다듬고, 용기를 북돋웠다.

학교에서 반장도 하고 공부도 곧잘 할 정도로 회복된 지혜를 보며, 정씨는 가해자인 전남편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누군가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맞설 용기를 얻었다. “법적인 처벌도 처벌이지만, 정말 중요한 건 치유를 위한 지원입니다. 서로 힘이 돼줄 수 있는 지지모임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어요.”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출처 - 한겨레 09.10.07]